드라마에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에게 선덕여왕은 몇 안되는 괜찮은 드라마이다. 지난주 일식이라는 상징적 사건을 둘러싼 심리전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화요일 느즈막히 집에 들어온 뒤, 이 재밌는 드라마를 볼 요량으로 TV를 켰다. KBS1 <시사기획 쌈>이라는 프로그램이 막 시작되고 있었고 "최초공개 외환위기 미 비밀무서-IMF와 트로이 목마"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선덕여왕은 어느덧 내 머리속에서 잊혀져버렸고, 흥미로운 주제의 시사프로그램에 자연스럽게 몰두하게 되었다. 내용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미국 정부의 비밀문건을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당시 긴박했던 정황과 미국과 한국 사이에 벌어졌던 일들을 나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외환보유고 문제가 아닌 단기부채 급증으로 인한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경고, 당시 위기를 빌미로 한국의 강력한 구조개혁과 시장 완전개방을 통해 무역과 투자기회 향상의 선물을 받고자 IMF를 통한 지원방침을 강경 고수했던 미국의 행보 (실제로 미국은 당시 일본이 추진한 AMF를 통한 한국 자금조달 계획을 차단했다고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한국의 IMF 자금조달조건 수용, 급속한 개방 이후 정리해고, 비정규직 확대 등이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친 부작용과 외국계 자본 유입으로 기업의 중장기적 성장전략과 근로자 복지 등을 무시한 단기수익 위주의 경영 현실 등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그로 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우리 정부를 너무나 가혹하게 옥죄었던 IMF와 미국 재무분야의 실무자들은 오바마 현 정권의 핵심 세력으로 성장해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를 타개해나가기 위한 여러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그들이 당시 주장했던 살을 도려내는 구조개혁과 자유경제의 기치를 드높이기 위한 완전시장 개방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말이다.
우리는 10년 동안 미국이 주장하고 원했던 방식으로 경제구조를 만들고 정책을 시행해 왔는데, 지금에 와서 자신들 스스로 그것이 근본적으로 틀렸고 다른 방식을 만들어 보완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그램은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끝을 맺었다. 각계 전문가와 기자들의 증언, 문건 등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간에는 미국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에 화가 났지만,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 문득 떠오르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될 줄 알고 그렇게 했을까?
아닐 것이 자명한 일이다. 전 세계의 경제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리고 예상을 못하는 판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렇게 당할 수 밖에 없었을까?
첫번째는 힘의 차이로 떠밀릴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었다는 점이 가장 컸을 것이고,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판단할 기준과 경험, 그를 토대로 한 미래를 바로볼 수 있는 능력이 전무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이라는 수퍼파워를 좁히고 좁혀 통신/네트웍 솔루션 분야를 들여다 보면 시스코라는 회사로 제대로 투영된다.
시스코가 보여주고 있는 기술과 마케팅 능력은 독보적이며, 찬탄을 금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객관적으로 더 수퍼파워일 수 있지만,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해 통신 어플리케이션 시장을 야금 야금 잠식해나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현찰을 보유한 기업, 시스코의 모습은 경이롭다 못해 두렵기만 하다.
이 쯤에서 질문들을 다시 던져본다.
시스코의 기술과 방향이 다 옳을까?
우리가 그들의 솔루션을 무비판적으로 너무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시스코에서 얘기한 UC가 진정 필요하며 도움이 되는 현실적인 솔루션일까?
모두가 믿었던 미국의 세계 자유경제 체제가 틀렸다고 지금 모두가 인정하는 것처럼, 시스코도 잘못된 방향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우리의 비즈니스를 생각해보면서, 당연시 했던 것들을 조금은 비뚤고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노력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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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트 2009/09/06 1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생각을 많이하게 하는 글이군엽.. 정말 우리가 IPT 또는 MPLS로 반드시 가야만 했는 가 라는 물음 인듯.. 기존의 PBX는 고객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했던 장비이고, 고객의 불만도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인데 말이죠...
꼭 한번 방송을 봐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
저는 이런쪽에 관심이 없지만...
과연 나는 그 방송을 보면은 무슨 생각을 할까... 라는 궁금증도 생기고 하네요 ㅎㅎ
항상 2009/09/23 15: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끌려가는 느낌에서 다시금 중심을 잡아야 한다라는 느낌.
카피콘 2009/11/16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덕분에 방송을 찾아 봐야겠군요. 고민속에 답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야는 넓힐 수 있을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